영혼의 돌봄 목회를

위한 7가지 대답들

영혼의 돌봄 목회는 자기 돌봄의 목회에 속한다. 그것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목표의 성취라기 보다 삶의 여정을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빚어가는 동시에, 자기의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보고, 확인하며, 돌보고, 확장시켜서 하나님과 다른 존재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일상적인 시도에 가깝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얽매이던 것들로 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에 익숙해 지도록 할 뿐만 아니라, 삶의 과제들을 잘 감당하되 이에 전보다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신의 영혼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더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체험하는 가운데 중심이 부요하게 되어, 삶의 결정을 만들되, 사소한 것들로 부터 혹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돕는 자기 돌봄의 목회라 칭할 수 있다. 영혼의 돌봄이 주는 유익들은 분명 내적, 외적 변화와 치유를 가져오는 동시에, 이 땅 안에서 하늘의 쉼을 얻는 법을 터득하도록 한다. 세상을 더 뜨겁게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첫번째 대답 (First Wheel)

영적 돌봄 목회는 다른 유사한 영성 목회들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가?

가장 큰 차이점은 영혼의 돌봄 목회는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 "자기 돌봄을 이루기 위한 자기 실천" 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영혼의 돌봄 목회와 유사한 목회들이 있다. 예를 들면, 목회 상담 (Spiritual Counseling), 영적 지도 (Spiritual Direction), 그리고 영성 형성 (Spiritual Formation) 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이다. 영혼의 돌봄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돌보는 체계라는 점에서 상담자나 특정한 리더들에 의존하는 위의 세가지 목회들과 차별된 고유성을 갖는다. 또한 목회가 이뤄지는 장소에 있어, 목회 상담이 내담자 혹은 내담자들과의 만남, 영적 지도가 분별을 위한 일대일의 특정한 장소, 영성 형성 프로그램의 경우, 이를 위해 소그룹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기 적합한 곳을 필요로 하는 반면, 영혼의 돌봄은 주로 홀로 있기와 침묵을 가질 수 있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위의 세가지 목회들의 경우, 특정한 목적과 의도를 바탕으로 그것의 성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목회 상담은 “위기 극복”, 영적 지도는 “분별”, 영성 형성은 “영적 원리를 배우고 이를 통한 경험을 나눔”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영혼의 돌봄은 특정한 목적과 의도를 위한 작업이라기 보단 삶의 패턴과 질에 도움이 되는 습관적 영성을 일상 생활 가운데 만들어 감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존재로, 관계성으로, 생각’으로 발전해 가기 위한 시도에 가깝다 할 것이다.

두번째 대답 (Second Wheel)

영혼의 돌봄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영혼의 돌봄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혼의 돌봄의 원천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간과할 때, 영혼의 돌봄이 다른 부류의 것들로 왜곡되어 발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상, 원천을 이해하면, 영혼의 돌봄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유익을 준다. 우리가 자기 돌봄의 목회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킨다고 할 때, 이는 두가지를 전제로 하는데, 하나는 자기 중심의 비움, 또 하나는 자기 중심의 이동이다. 영혼의 돌봄이 영성 목회의 한 부분에 속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기독교 영성 (Christian Spirituality)의 본질적인 두가지 성질들 - 비움(emptiness)과 이동(movement) - 을 영혼의 돌봄도 본질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무엇을 향해 자신의 영혼이 향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돌봄은 자기 돌봄(self-care)인 동시에 자기 돌봄에 국한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나 자신을 던져버리기 위한 의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돌봄이 자신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건이라고 할 때, 영혼의 돌봄은 자기의 비움과 이동을 요한다. 나의 전인(wholeness)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기 위해 나 자신의 상태, 심지어 필요까지도 내려놓는 것을 요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모든 것, 특히 모든 회복과 갱신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돌봄 목회는 사실상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세번째 대답 (Third Wheel)

왜 영혼의 돌봄에 참여해야만 할까?

왜 우리는 영혼의 돌봄 목회에 참여해야만 할까? 즉 우리의 영혼은 어떤 상태에 있길래 우리의 영혼이 돌봄과 확장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현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목회적, 영적 영감을 주는 인물들 중 한명으로 거두되는 존 오르트베르그 (John Ortberg)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의 영혼은 “머무는 것(aboding)과 부요해지는 것 (abounding)” 사이에서 적절한 외줄타기를 하는데 유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고, 부요한 상태를 소화해 내는데도 적합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오르트베르그는 이러한 결핍을 바탕으로 우리가 왜 스스로 영혼의 돌봄 목회의 실천 혹은 지지를 받아야 하는지 5가지 구체적인 이유들을 언급한다.


  •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놓여지게 만들 필요가 있다.

  • 우리는 리듬을 필요로 한다.

  • 우리는 우리의 휴식을 위한 계획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네번째 대답 (Fourth Wheel)

영혼의 돌봄을 통해 자기 돌봄을 실천하게 될 때, 우리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민디 칼리과이어 (Mindy Caliguire)는 하나님의 테이블에 우리 자신을 자리 잡게 할 때, 어떤 일이 있어나게 되는지를 그녀의 책 “영혼의 돌봄을 회복하기 (Discovering Soul Care)”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녀의 견해는 영혼의 돌봄 목회의 필요성을 또다른 관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해준다 하겠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비추게 될 때, 우리는 6가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


  • 인간 영혼을 변화시키는 능력

  • 만물의 존재 이유와 본질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

  • 참된 자기 깨달음과 긍휼의 마음

  • 개인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

  •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연결점으로써 바라보게 되는 지혜

  • 자유와 용서

한편,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영혼의 돌봄을 실천한다는 것을 우리가 문제가 없는 존재가 된다거나 완벽한 영구적 만족에 이를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영혼의 돌봄의 그러한 갈망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일시적인 현상을 일으킬수는 있어도, 그러한 기대는 영혼의 돌봄 목회의 근본적인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필요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돌보는 일은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돌봄과 확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요와 갱신의 원인을 가져온다.

다섯번째 대답 (Fifth Wheel)

영혼의 돌봄 목회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영혼의 돌봄 목회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몇가지 단계들은 교회 혹은 신앙 공동체 안에 영혼의 돌봄 목회가 자리 잡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영혼의 돌봄이 왜 필요한지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초대하는 것.

두번째 단계는, (전문가를 초청하여) 영혼의 돌봄에 관하여 배우기 위한 세미나나 모임을 개최하는 것.

세번째 단계는, 소그룹으로 영혼의 돌봄의 원리들을 실천하고 나눌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네번째 단계는, 단기 기도 리트릿을 통해 이를 깊이 체험하는 것

다섯번째 단계는, 영혼의 돌봄을 위한 습관적 실천 일정을 짜보는 것.

여섯번째 단계는, 분기별 혹은 몇개월 단위로 1개 혹은 2개의 원리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는 것.

일곱번째 단계는, 간증집을 출판하도록 하는 것.

여덟번째 단계는, 초대와 리트릿을 다시 시도하는 것.

아홉번째 단계는, 1단계-8단계를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것.


여섯번째 대답 (Sixth Wheel)

영혼의 돌봄 목회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혹은 역사적 근거들은 무엇인가?

영혼의 돌봄은 하나님의 현존 속에 살아가는 것과 그것을 통한 존재의 형성과 재형성에 주목하는 영성 목회 (Spiritual Formation Ministry)의 본질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할 것이다. 실제로 영혼의 돌봄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배경을 살펴보면 영혼의 돌봄에 대한 목회적 요청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Soul)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Soul)을 바꾸겠느냐? (마가복음 8:3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 3서 1:2)


지금 내 마음(Soul)이 심히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이까? (요한 12:27)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리이다. (누가복음 1:46-47)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62:5-6)


이 외에도 성경에서는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관계성은 영혼의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시사해 준다 할 것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영혼의 돌봄 목회의 기원을 18세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흐름 속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시애틀 퍼시픽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학자들은 목회 실천의 예로써 18세기 존과 찰스 웨슬리가 시작한 영적 운동을 영혼의 돌봄 목회의 본격적인 계기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학자들의 경우, 현대적 영혼의 돌봄의 목회가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별히 콘코디아 신학교에 있는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마틴 루터가 가르치는 “율법과 복음 그리고 구원 사이의 관계성”이 어떻게 우리 영혼을 돌보는 길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연구한 리차드 마르스 (Richard Marrs)와 레인하드 슬렌츠카 (Reinhard Slenczka)와 같은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영혼의 돌봄은 특정한 실천 속에서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의 사랑 안에서 자기 발견, 치유 그리고 변형을 간구한 모든 이들에게 이미 이뤄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것이라 할 것이다. 즉 특정한 인물이나 운동이 아닌 영적 생활에 전념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영혼의 돌봄 목회의 한부분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 것이 영혼의 돌봄 목회의 시작점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부터 사도 바울의 회심 이후의 3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윗의 시편들과 예언서 저자들의 고백들 모두, 영혼의 돌봄을 체험하고 이를 목회의 방식으로 실천한 예들에 속한다. 교회 역사에서는 히포의 어거스틴, 사막 교부들, 현대에 와서는 C.S 루이스나 헨리 나우웬 같은 인물들이 영혼의 돌봄 목회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준 인물들에 속한다.


일곱번째 대답 (Seventh Wheel)

영혼의 돌봄 목회에 있어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는 무엇인가?

자기의 영혼을 돌본다고 할 때,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라는 신화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영혼의 돌봄에서 제시하는 원리들은 도구이지 원천이 아니다. 그것이 지도(map)일수는 있어도 목적지(destination)는 아닌 것을 분명히 하자. 한편, 영혼의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들 중 신앙공동체나 교회의 지도자들, 특별히 목회자의 치리와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영혼을 복되게 하기 보다 망치는 길이다. 영혼의 돌봄이 자기 돌봄 뿐만 아니라 확장성을 의미한다고 할 때, 신앙 공동체를 섬기고 속하고 그 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영혼의 돌봄의 취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만약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의 안내를 받지 않고 자기 돌봄에만 집중한다면, 그리스도의 도가 아닌 자기 숭배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그런 사람들 중 교회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왜곡시키며, 영혼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타락한 천사 루시퍼처럼 말이다.